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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30 경인년(庚寅年) (6)
- 2009/12/29 후배 (5)
- 2009/12/24 자격증 (9)
- 2009/12/23 눈은 바람에 날리고 물위엔 흰죽지
- 2009/12/22 우표-쇠제비갈매기
- 2009/12/20 댕기머리 호사비오리 (3)
- 2009/12/18 인절미 (7)
- 2009/12/17 기러기
- 2009/12/17 군무(群舞)를 펼치는 가창오리 (5)
- 2009/12/17 추운날 날틀 운행 (5)
- 2009/12/07 대청호의 아침 (6)
- 2009/12/04 연습
- 2009/12/03 어렸을 적 (3)
- 2009/12/02 아침소경(小景) (4)
보다 새로운 시각의 사진이 필요했고 취미로도 꽤 괜찮은 것 같아서 였다.
배우기로 결정하자마자 은행에서 가서 대출을 신청 거금 1,000만원을 들여서 주문을 했다.
아직 한국에는 보급이 많지 않고 모터는 대부분 유럽에서 수입 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 좀 시간이 걸렸다.
암튼 이제는 혼자서 잘 타고 논다.
이륙이나 착륙을 하면 인근에 있는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다가와 여러가지를 물어 본다.
그 질문의 내용은 대략 3가지이다.
첫번째로는 얼마면 살 수 있냐 -
답: 1,000만원 조금 더 든다. 가장 싼 것으로
둘째로는 얼마나 배우면 탈 수 있냐
답: 배우기 나름이다. 한 3개월은 배워야 한다
세번째로 자격증은 필요하냐 등이다.
답: 따야한다. 7월에 법안이 통과돼 1년동안 유예기간이 있으니까 내년 7월까지 따면 된다.
드디어 지난 10월 자격증을 땄다.
이제 불법 비행은 안녕~~~
잠수성오리류인 흰죽지 무리를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댕기흰죽지도 보이고요.
암튼 새를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보면 모든 근심도 배고픔도 사라집니다.
아마도 저에게는 탐조와 촬영이 특효약인가 봅니다.
눈이내리는 금강변에서 흰죽지들이 먹이활동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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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길이 약 28cm이다. 다리는 노란색이며 발톱은 검정색이다. 흰 이마와 검정색 정수리가 대조를 이룬다. 꽁지는 짧은 제비꼬리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전국에서 번식하는 여름새다. 먹이를 발견하면 재빨리 물속으로 다이빙하여 부리로 잡는다. 바닷가 자갈밭이나 강가 모래밭에 떼지어 둥지를 틀고 4월 하순에서 7월에 2∼3개의 알을 낳아 20∼22일 동안 품는다. |
이 호사비오리는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8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는 전세계적인 희귀종이다.
늘 도와주시는 분이 금강변에 호사비오리가 있다는 전화를 받고 한 걸음에 갔다왔다.
댕기머리 모양의 호사비오리는 참 예민 한 것 같다 오전 내내 한번만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는 나타나질 않았다.
그나마 몇장 찍은 것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호사비오리[豪奢비오리] - 오릿과의 새. 몸은 바다비오리와 비슷한데 암컷이 수컷보다 작다. 머리, 목 및 윗등이 검으며 등과 허리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가로무늬가 있고 배는 흰색이다. 시베리아와 중국 북부에 분포한다. 러시아 남동부, 중국 북동부, 한반도 북부에 서식하고 있으며,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 소수가 살고 있다. 전세계에 500~3000마리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사비오리 수컷 한마리가 강을 따라 유영하고 있다.
호사(豪奢)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극호사[極豪奢] - 더할 나위 없이 호화롭게 사치를 함. 또는 그 사치.
길호사[길豪奢] - 벼슬아치가 새로 부임하거나 시집·장가갈 때에 호사스럽게 차리고 길을 가는 일. 또는 그런 차림.
잔풀호사[잔풀豪奢] - 어린 풀의 호화스러운 치장이라는 뜻으로, 분에 넘치는 호사나 허영에 들뜬 옷차림을 이르는 말.
호사롭다[豪奢롭다] - 같은 말: 호사스럽다.
호사바치[豪奢바치] - 몸치장을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하는 사람.
호사스럽다[豪奢스럽다] - 호화롭게 사치하는 태도가 있다.
호사품[豪奢品] - 같은 말: 사치품.
기러기는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왔다가 봄에 돌아가는 철새다. 체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V자 형태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특징을 지낸 새로 질서와 서열을 중시한다.
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는 혼자서 날아가는 것보다 최소한 71% 더 먼 거리를 날 수가 있다.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의 날갯짓이 바로 뒤에 따라오는 다른 기러기에게 상승기류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기러기의 외로운 모습과 절개를 지키며 가족애를 발휘해 혼자 새끼를 키우고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기러기아빠’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떨어져 혼자 사는 40~50대 기러기 아빠는 점차 늘고 안타까운 현실에서 다시금 기러기라는 새를 생각하게 된다.
하늘이 석양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하천 가운데에서 쉬던 가창오리들이 먹이터로 이동하기 위해 수면을 낮게 날며 워밍업에 들어간다.
한동안 수면을 돌던 수십 마리의 가창오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물결 모양의 화려한 군무가 펼쳐지면 탐조객들과 사진을 담으려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수십만 개의 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내는 가창오리는 자연의 행위예술가이다. 저녁노을과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군무는 전세계 개체의 90%이상이 월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다.
가창오리는 군집성이 아주 강한 야행성 오리이며 얼굴에 노란색과 녹색의 태극문양이 있어 태극오리라고도 하며 북한에서는 반달오리라 불린다. 멸종 위기의 국제보호종인 가창오리는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으로 보호받고 있다.
아침 햇살도 꽤 괜찮았고 시정거리도 좋았으나 영하 4도까지 떨어진 추위가 좀 걱정이 되었다.
스키복과 고어텍스 옷으로 중무장하고 하늘을 오르니 손가락 말고는 별로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호수로 가는 동안 강은 바닥이 다 보여 깊이를 가늠할 수 있어서 별로 무섭지 않았지만 대청호로 들어서고 호수 바닥이 보이지 않아 무서움이 엄습했다.
물론 자동 구명조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워낙 물을 무서워하는 체질이라 얼른 산으로 도망을 가면서 바라본 대청호의 아침풍경은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어 날틀은 담배 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다.
나는 옥천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수몰된 대덕군 동면에서 살다가 4살 때 신탄진으로 이사를 왔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은 동면에 살았을 때부터 시작된다.
동면에 살았다는 생각은 아주 조금밖에 없다.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와 이발소, 이발사 아저씨가 먼지 많이 날린다며 물 뿌리던 모습 그리고 언덕위에 있던 초등학교 가는 길 정도가 전부다.
또 당시 살았던 집은 부엌을 통해서 들어간 단칸방이고 창문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4살의 기억을 뒤로 하고 신탄진으로 이사를 왔다. 아마도 당시는 대덕군 북면으로 불리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신탄진 연초제조창에 이어 두 번째로 크던 남한제지 옆에 삭월세로 왔던 것 같다.
그곳에서 국민학교 1학년때까지 다녔다. 아마도 5~6살때일것으로 기억한다.
그 공장 정문 옆에는 방공호가 있었고 그곳이 우리의 놀이터 이었다. 또 정문 앞에서 보리밭과 물 둠벙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깜부기라고 보리가 제대로 여물지 않고 새까맣게 변한 것인 깜부기를 가지고 서로 얼굴에 묻히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 공장은 어린 나에게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위엄이 있어보였다. 그리고 긴 철조망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항상 거리를 두고 걸어 다녔고 낮 12시가 되면 점심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그 사이렌은 어린 우리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시간을 알려주던 아주 중요한 지침이었다.
얼마전 신탄진 새여울 나루터가 있는 금강을 둘러봤다.
어릴적 기억이 생각나는 곳이고 내 인생이 시작된 곳으로 고향이다.
고향은 늘 그립고 생각나는 곳인가 보다.
강 건너는 충북 청원군 현도면이다.단풍이 곱게 든 이 산 중턱의 산길을 따라 친구들과 거닐었고 당시 유명했던 노산 솔밭을 걸어서 다녔다.
금강철교와 현도교. 오른쪽 아파트 단지가 예전부터 살았던 지역이다.
옛 풍한방적공장의 자리는 엑슬루타워 건설현장으로 바뀌고 뒤로 파란 건물은 한국타이어
남한제지(파란지붕 많은 곳)
KT충남망건설센터(콘크리트바닥이 많은 곳)-어렸을적에는 이곳이 공병대가 주둔하던 군부대였다.
그 당시는 변변한 건물도 없던 정말 깡촌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바꿔 놓았다. 6.25 당시 북한군의 남하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폭파 시켰던 신탄진철교